<간도 문제 – 핵심을 우선 제대로 알아야..>

 간도문제?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근거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이 문제가 왜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인지, 그리고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댓글을 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이문제에 관심이 있는 한국 사람이라면 수원에 있는 경희대 혜정 도서관이란데 한번 가서 바로 일본인이 일본인 손으로 그린 조선통감부 지도 한부를 보기를 권합니다. 여기 보면 두만강과 토문강이 분명 별도의 강으로 표기된 조선통감부의 지도 원본이 있다 하는데일본인들이 그려낸 두 강의 위치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다음은 그럼 왜 이 문제가 애초에 생겼을까 ?  다음의 글을 비교적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통감부는 1907년 간도에 조선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간도 출장소의 설치는 일본 정부가 간도 문제에 있어 종래 조선 정부가 취해 온 입장을 시인한 뒤의 조처였다.  간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승인하고 난 뒤의 행정 조처였던 것이다. —————————————————————————————간도 파출소가 편찬한 〈한청국경문제의 연혁〉이라는 문서를 통해 일본은 토문강은 송화강상류로서 두만강과 관계가 없으며, 두만강이 결코 천연의 국경선일 수 없다고 여러 조항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 또한, 간도 출장소에 소장으로 취임한 일본 육군 중좌 사이토(齋藤季次郎)는 “간도는 한국 영토라 간주하고 행동할 것임”을 성명했다. 조선 통감부는 1909년에 청나라의 변무독판(邊務督辦) 오녹정(吳綠貞)에게 간도는 한국 영토의 일부임을 통첩하고, 간도 거주 한국인은 청나라 정부에 대한 납세의 의무가 없음을 성명하였다. 이와 같이 간도가 분명히 우리의 영토라고 조선 통감부가 성명하였고, 청나라에 통첩한 일제가 1909년 9월 7일 돌연 청나라와 간도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잘못된 이 협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두만강을 양국의 국경으로 하고, 상류는 정계비를 지점으로 하여 석을수로 국경을 삼는다. 2)  용정촌·국자가(局子街)·두도구(頭道溝)·면초구(面草溝) 등 네 곳에 영사관이나 영사관 분관을 설치한다. 3)  청나라는 간도 지방에 한민족의 거주를 승준(承准)한다. 4)  간도 지방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청나라의 법권(法權) 관할 하에 두며, 납세와 행정상 처분도 청국인과 같이 취급한다. 5)  간도 거주 한국인의 재산은 청국인과 같이 보호되며, 선정된 장소를 통해 두만강을 출입할 수 있다. 6)  일본은 길회선(吉會線 : 延吉에서 會寧間 철도)의 부설권을 가진다. 7)  가급적 속히 통감부 간도 파출소와 관계 관원을 철수하고 영사관을 설치한다. << 간도 협약에 의해 일제는 안봉철도(安奉鐵道)의 개설 문제, 무순(撫順)·연대(煙臺)의 탄광 문제, 영구지선(營口支線)의 철수 문제, 관외철도(關外鐵道)의 법고문(法庫門) 연장 문제 등 만주에서의 몇 가지를 교환하는 조건으로 중국에 간도를 할양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간도 협약은 우리 정부가 간여하지 않은 가운데 취해진 불법적인 우리 영토의 할양이었고, 이 협약은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국제 문서인 것이다. 협약에 의해 1881년부터 야기되었던 간도 문제는 28년만에 일제에 의한 불법적 할양으로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절차를 가지고 간도 귀속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 그럼 중국자료, 한국자료에는 어떻게 나와 있나 ? [중국 전요지(全遼志)에는 토문강의 이름을 토문하(土門河)로 적고 있으며 송화강의 원류라고 밝혀 놓았고, 정약용의 조선강역지(朝鮮疆域誌)에도 토문강은 송화강의 상류로 표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규장각(奎章閣)에서 찾아낸 백두산 정계비도(定界碑圖)에도 토문강원이 송화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즉 중국 문헌에 분명히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니고 송화강의 원류라고 명시 되어있어 고기록에도 간도 땅이 조선의 땅이라고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조그만 우리의 돌섬 하나인 독도를 가지고도 봄철만 되면 자기네 것이다 하고 심심하면 우기는판이고 국제 사법 재판소에 본건을 끌고 가겠다고 여러 채널을 통해 무수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 즈음에, 우리는 그 시한 100년이 다 되가는 마당에 이러한 件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있다는 것은 지나간 역사를 깡그리 무시한 처사이며,  거의 다시 써야 하는 지금의 역사책을 만들고고대사를 잃게 만든 사람들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