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 결과

[허탈과 허탈,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 ‘두 번 다시 속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 ‘깡채’라는 말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생겨난 신조어이다. 당시 김정일 독재정권은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전국적인 ‘공채운동’을 벌였다. ‘공채운동’이란 정권이 10년을 상환기간으로 주민들에게서 돈을 빌린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아 제도권에서의 화폐유통이 완전히 위축되자 정권이 인민들과 채무자 및 채권자의 관계를 형성해 주민들에게서 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공채운동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공채운동’을 싫어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신뢰할 수 없는 김정일 독재정권에게 돈을 맡겼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당시 북한 사람들에게는 10년 후 보다는 ‘지금 먹고 살기’가 더 급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에게서 호응을 받지 못하자 김정일 정권은 으례히 강압적인 실시를 강행했다.
 
노동자들의 노임을 몇 달씩 잘라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1년 중 3개월 노임을 의무적으로 공채운동에 바친 공장기업소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채운동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진행한다고 ‘깡채운동’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 중에서도 북한의 신흥부유층은 권력과의 관계를 유착시키고 환심을 얻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정권에 바쳤다. 물론 그들은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로 평가받았다.
 
그 당시 김정일 독재정권은 ‘지금은 나라에 경제적인 보탬을 주는 사람이 진짜 애국자’라고 널리 선전하며 공채운동의 일환으로 모범적인 신흥부유층들에게 훈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화폐개혁의 피해자는 바로 그 신흥부유층이었다.
 
7일 본 방송국의 함경남도 단천지구 통신원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지금 절망과 격분 속에서 지난 시기 공채운동에 돈을 바친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소식통은 그들이 “김정일 독재정권에게 속았다”며 격분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서 두 번 다시 김정일 독재정권에게 속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