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고수, 매국노와 같은 주장!!!

2002년 겨울, 제16대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돌출한 노무현후보의 ‘수도 충청권 이전’공약은 표심의 굳히기였는지 뒤집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노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천도공약으로 ‘재미 좀 보았다’고 술회했던 적이 있다. 재미 좀 보았다는 말, 이 말에서 나는 포퓰리즘을 적시에 사용한 정치공학적 기회주의와 그 바탕에 깔린 냉소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한국의 현대사를 ‘기회주의가 승리한 역사’라고 규정했던 망자 노무현으로서는 기회주의에 대한 기회주의적 응수였을 지도 모르지만 충청권에 확정된 세종시는 그러한 정치적 불륜으로 잉태된 원죄와 함께 태어 났고, 노무현 정부가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은 위헌이라는 판결에 편법적으로 대응한 결과, 천도론은 9부 2처 2청만을 이전한다는 수도분할 성형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고금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나라와 그 어느 민족이 이토록 경박하고 급박하게, 그것도 국민적 합의도출도 없이, 거기에 남과 북이 갈린 국가에서 ‘개인의 재미’를 위해 천도를 결정한 전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제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4조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던 천도론은 2009년 현재 22조원으로 그 예산의 몸집이 불었고, 전 정권이 남긴 잘못된 유산으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 여야간 극한의 대립, 여여 간 갈등은 이성과 합리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정치의 부재로서, 오로지 정략만이 날을 세워 검무를 추고 있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성을 상실한 국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역으로 갈린 정치세력들의 정치적 입장에 국민들도 하나 둘 씩 자기 출신 지역색에 맞춰 장단을 늘어 놓고 있기에 그렇다. 정치가, 정치꾼들이 국민들까지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줄을 서고 도장을 찍어 선출한 정치인들은 동인, 서인, 노론, 소론으로 갈라지고 분화하여 조선의 정치사를 당쟁사로 얼룩지게 한 사대부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전혀 다르지 않은 언설을 농하고 있음을 본다.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극한대립을 보면 16세기 말 희대의 정치적 비극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 선조 23년 3월, 임금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의도를 탐색하고자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을 통신사로 왜에 파견했다. 약 1년여에 걸친 여정 중 내내 불화했던 황윤길과 김성일은 귀국 후의 보고에서도 전혀 상반된 견해를 피력한다. 정사 황윤길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담이 크고 지혜로운 자로 보아 장차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한 반면, 부사 김성일은 그를 한낱 용렬한 자로 보아 전쟁의 위협은 전혀 없다고 단언을 하였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그렇게도 이가 갈리게 고생을 하게되는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의 서막이 된 것이었다. 작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표를 의식하여 세종시 원안을 수용했던 자신의 행적을 사과하고, 좀 더 효율적인 대안을 모색하자고 호소하였지만 반대세력은 요지부동으로 원안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정치적 계산, ‘정치적 재미’에 의해 졸속으로 태어난 세종시 원안은 결코 ‘무오류의 진리’와 같은 계획이 절대 아니다. 차라리 원안을 계획했던 사람들 스스로가 왜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고 저리도 수정안에 대한 비방만 늘어 놓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1582년, 임진왜란으로 수모를 격기 10년 전, 46세의 율곡 이이는 30세의 젊은 선조임금에게 직설의 상소’진시폐소’를 올린다. 그 중의 한 구절,,,”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라고, 목숨을 걸고 간하는 율곡 선생의 일갈, 송복 연세대 교수의 역저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세종시,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지금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의 진실되고 책임있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통과는 그 내용과 무관하게 난망한 듯 하다. 현재의 상황이 고착되어 원안대로 진행될 경우,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누가 이 시대의 황윤길이고, 누가 김성일인지 판가름이 분명하게 날 것이다. 그 때를 위해 지금 각 정파가 자신의 정치적 야욕만을 위해 내세우고 주장하고 있는 세종시의 전말은 상세하게, 그 무엇보다도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을 기만하고 속인 역사적 죄인에 대한 진짜 심판을 우리 국민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 녹색혁명과 녹색산업만큼 매우 중요한 이 시대의 화두요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나라는 지금 어불성설 정치인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 시기이다…..(김교수님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