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베트남과 양탄자거지 중국이라 놀림받던 개망나니중국군

호치민의 베트남과 양탄자 거지 중국과의 전쟁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45년부터 1954년 . 프랑스는 1백 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하다가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이 베트남에 진주합니다. 일본은 베트남을 1941년부터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합니다.그러나 일본은 한국처럼 직접 총독부를 두고 지배하지 않고 식민지를 다스리고 있던 프랑스 총독부를 그대로 두고 프랑스 관리들을 앞세워서 식민지 통치를 계속합니다. 1944년 일본이 종전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프랑스를 몰아내고 직접 통치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베트남은 1945년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 같은 해 9월 2일에 호치민 (胡志明, 1890~1969)이 이끄는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을 발족영국과 [중국의] 장개석 군대가 일본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에 진주합니다. 17도 선을 중심으로 해서 남쪽에는 영국군이 들어오고 북쪽에는 장개석 군대가 들어옵니다.일단 16도선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연합군의 진주가 이루어 집니다.  호치민이 있던 북부는  장개석의 군기 빠진 국민당 군이 진주했고,  남부에는 그레이시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이 배치됩니다.   장개석 군대는 군기가 형편없고 부패해서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그레이시 장군은 극우적 식민주의자라서 프랑스의 식민지 회복에 동정적이고 적극적이었습니다. 사이공에 주둔한 영국군은 당장 일본군이 체포한 프랑스 포로들을 석방하고, 질서유지를 위해서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지 않고 그대로 투입합니다.   결국 일본군이 무장을 한체 베트남 무장독립투쟁그룹과 전투를 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군은 무장해제되고 프랑스 군이 대거 돌아오면서 영국군은 보유한 항공기 등 상당수의 무기를 그들에게 제공하고 철수합니다.남쪽에는 호치민의 거점이 별 시원치 않았기에 문제가 크지는 않았으나 북부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호치민의 베트민세력의 주 거점이 있었으니까요.  여기서  호치민은 결정을 해야하는 처지가 됩니다.  장개석의 중국군은 좀처럼 물러갈 생각을 안하고 행패가 극심해 지고 있었고  프랑스는 다시 북부에 재 진주하고 싶어합니다.  원래대로라면 프랑스가 당연히 복귀될 듯 싶지만   프랑스 국내나  미국 등 탐탁치 않은 국제여론이 있습니다.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호치민은  프랑스를 택합니다.  개망나니 중국군이 눌러앉으면  이웃이라서 언제 떠날지 기약이 없고 상전 행세를 할게 뻔합니다.  그러니  호치민은 세계대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프랑스를 선택합니다.  조만간 몰아낼 구상을 가지고… 당시 장개석 총통은 충칭에서 인도차이나를 담당할 프랑스의 새로운 고등 판무관인 티에리 다르장리에(Georges Thierry d’Argenlieu)제독을 받아들입니다.프랑스와 중국은 경제적 상호 이익을 추구하며 북부 베트남에관한 모종의 논의를 시도합니다. 1945년 10월 15일, 쟝 생트니는 하노이에서 호치민과 만났읍니다.당시 호치민은 필사적으로 프랑스와 협상에 매달렸읍니다.프랑스는 베트남을 자유국가로 공인하고 1952년까지는 15000명의 프랑스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공언합니다.호치민은  중국군을 몰아내기위하여 베트남 북부에 15000명 가량의 프랑스 군 주둔을 용인하는 대신 거의 20만명에 가까운 중국군을 철수시키는 협상에 동의합니다. 이것은 북부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중국군을 몰아내기 위한 호치민의 고육지책이었읍니다. 15,000명의 프랑스 군대가 치안을 유지하도록 용인하면 중국군을 베트남에서 떠나보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읍니다.그동안 중국군은 “양탄자 거지”라는 명성답게 하노이의 모든 것을 약탈하며 전리품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읍니다.그리하여 중국군이 철수하고 1946년 3월 6일부터 프랑스 군대가 하노이에 주둔하게 되었다.그후 프랑스군과 1946년~1954년에 걸쳐 베트남 민주공화국군과 전쟁을 전개하였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그러나 1954년 5월 프랑스군의 거점인 디엔 비엔 푸의 함락으로 같은 해 7월 휴전을 위한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었다. 협정의 내용은 북위 17°선을 잠정적 군사경계선으로 정하고, 2년 후에는 전국적으로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5년 남베트남에 고딘디엠 정부(자본주의 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반대하는 공산분자들은 테러 공격을 감행하였고, 1960년 12월 남베트남에서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이란 이른바 ‘베트콩’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또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의 원조를 받아 더욱 세력을 확장하였고, 선거를 통해 베트남 전역을 장악할 수 없게 된 공산측은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